“
소액도 사기 공범이 될까
”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끔 블로그나 SNS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자신을 “구매대행업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받은 돈을 내 계좌로 입금하면 그걸 엔화로 환전해 일본 업체에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죠.
금액도 100만 원 이하라 큰 부담이 없어 보이고, 얼핏 보기엔 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 한국 계좌가 ‘사기계좌’로 정지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상황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은 바로 이 지점, 가벼운 부탁처럼 보였던 송금대행이 어떻게 구매대행 피싱으로 연결되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 구매대행 피싱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겉으로는 단순한 송금 부탁 정도로 보이지만, 구조를 뜯어보면 상당수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세탁 방식과 거의 일치합니다.
이른바 구매대행 피싱이죠.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로부터 갈취한 돈을 그대로 사용하면 바로 추적되기 때문에 중간에 여러 명의 일반인 명의 계좌를 끼워 넣어 흔적을 흐립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말들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그냥 간단한 알바예요.”
“세금 때문에 직접 송금이 안 돼요.”
“본사 자금이라 기록을 남기면 안 돼요.”
이 구조는 코인 송금대행, 라인페이 충전, 명품 구매 알바 등 이름만 달라질 뿐, 실제로는 범죄수익 흐름을 세탁하는 방식이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국내 금융계정으로 들어온 돈을 엔화로 환전해 일본 업체나 라인페이, 혹은 제3자에게 보내는 순간부터 해당 명의는 이미 자금 이동 과정의 중간 허브 역할을 수행한 것이고,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이를 범죄수익 은닉·이전행위에 관여한 정황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최근 자금이동 범죄에서는 금액 자체보다 수행한 역할, 반복성, 고의 가능성을 훨씬 더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즉, 금액이 작더라도 구조가 비정상적이면 사기 공범, 범죄수익 은닉, 전자금융거래법 위반까지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 구매대행 피싱,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것들
한국 계좌가 ‘사기계정’로 정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면 이는 이미 금융권 전체에서 해당 명의가 위험 거래에 연루된 것으로 등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급정지뿐 아니라 추가 금융 거래가 제한되거나, 일부 은행에서는 신규 계정 개설이 거부되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금융사기 관련 명의는 본인이 직접 소명하지 않으면 자동 해제되지 않고, 특히 해외 체류 중이라 대응이 늦어지면 기록이 장기간 유지되기 때문에 나중에 국내 금융 서비스가 필요할 때 큰 불편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아래 절차는 진행해야 합니다.
첫째, 은행을 통해 공식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합니다.
왜 정지됐는지, 어떤 사건 번호가 부여됐는지, 담당 수사기관은 어디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이후 대응 방향을 세울 수 있습니다.
둘째, 당시 거래를 제안한 사람과의 모든 연락 기록과 관련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블로그 DM, 메신저 대화, 이메일, 입출금 내역 등 당시 정황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들은 모두 중요한 소명 근거가 됩니다.
셋째, 해외에 있어 직접 방문하기 어렵다면 서면 제출 방식을 활용해야 합니다.
이메일, 팩스, 재외공관 공증 위임장 등을 이용하면 진술서와 자료를 국내 은행 또는 수사기관에 제출할 수 있으며, 해외 거주를 이유로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 형사책임을 가르는 판단 기준
형사 사건에서는 “정말 몰랐는가”가 핵심 쟁점이며, 구매대행 피싱에서는 세 가지 기준이 특히 중요합니다.
첫째, 구조 자체가 의심스러웠는지입니다.
해외 송금, 과도한 수수료, 반복 송금 요청 등이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의심했어야 한다고 보며, 이를 법적으로 미필적 고의라고 판단합니다.
둘째,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행동입니다.
거래를 즉시 중단했는지, 상대방과의 연락을 끊었는지, 반환을 시도했는지 등은 가담 여부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셋째, 소명 자료의 구체성과 일관성입니다.
제안 경위와 거래 흐름을 메신저·입출금 내역 등으로 정리해 제출해야 신빙성이 인정됩니다.
또한 일본 계좌는 한국 사건만으로 바로 정지되지는 않지만,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 일본에서도 자금세탁 의심 보고가 이루어져 금융 거래 제한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 이번 사건은요.
단순한 “소액 해외송금 알바”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조직이 활용하는 구조에 연루된 사례로 보이는 만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제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본인이 어떤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실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출하는 과정이 향후 불이익을 줄이는 현실적인 대응이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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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 검사출신변호사 추형운